프린터, PC를 떠나다
HP는 매년 빅뱅 행사를 열고 매우 특별한 프린팅 관련 제품과 기술을 소개해왔습니다.이번 빅뱅 행사가 열린 곳은 홍콩 샤우 스트디오(Show studios). 홍콩 액션 영화의 산실이었던 이곳에서 HP가 어제(6월 29일) 선보인 색다른 비즈니스 프린터를 목격했습니다. 사실은 색다른 프린터라기보다 이제까지 HP가 주장해왔던 웹프린팅의 완성형을 선보였다는 게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난해 HP는 웹프린팅의 실험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웹프린팅은 인터넷을 통해 각종 컨텐츠를 인쇄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지난 해 프린터에서 웹에 접속해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던 것이죠. 하지만 그 때의 웹프린팅은 기능이 매우 빈약했습니다. 웹에 접속할 수 있다지만, 웹이라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HP가 운영하는 사진 업로드 사이트인 스냅피시에 올려둔 사진을 인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냅피시 서비스가 없는 국가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쓸 수도 없었을 뿐더러 다른 사진 공유 서비스를 쓰는 이용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죠.
이 문제는 지난 해에 쓴 글(인터넷 품은 잉크젯 프린터,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에서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HP도 이날 밝혔듯이 IT가 발달할수록 프린트 양은 더 많다고 했습니다. 프린팅해야 할 웹컨텐츠가 엄청 늘었는데, 2012년은 지금보다 3배 이상 프린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중에 대부분은 사진이 아니라 웹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웹을 어떻게 연동해 프린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겠지요. 프린터 자체가 PC가 되는 날은 오기 힘들겠지만, PC에 준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고민도 분명히 따라 붙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적에 대한 진보한 해법을 HP가 이번 빅뱅 행사를 통해 내놓은 것입니다. PC에 준하는 능력은 아직이지만, 스마트폰의 환경과 비슷한 확장성을 갖춘 웹프린팅 제품들을 선보인 것이죠. PC가 없어도 프린터 스스로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웹에 있는 저장되어 있는 컨텐츠를 불러와 출력하고 이를 다시 웹으로 보내는 일이 가능케 된 것입니다. 인쇄를 하고 스캔하는 프린터의 기본은 변함이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을 추가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춘 것입니다.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환경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한 가지가 다릅니다. 스마트폰은 응용 프로그램을 단말기에 내려받아 실행하지만, 이프린터는 앱을 프린터에 다운로드하진 않습니다. 단지 이용자가 프린터를 켜는 순간 서버에 접속해 이용자가 선택한 응용 프로그램 목록을 읽고 프린터에 표시합니다. 예전 프린터라면 PC에 접속해 드라이버를 깔아야 했지만, 이프린터는 PC가 아니라 인터넷과 연결해야만 쓸 수 있는 프린터인 것이죠. 이것이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의 웹프린팅입니다.
드라이버가 없어도 여러 장치를 연결해 인쇄할 수 있다.
서버에서 실행되는 다양한 앱을 통해 프린터에서 바로 인쇄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쓰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것인데, 이날 HP가 강조한 것은 쉽다는 것입니다. 쉽게 연결하고, 쉽게 다루고, 쉽게 결과물을 얻는 것입니다. 이용자가 해야 할 일은 새로 산 프린터를 유선이든 무선이든 인터넷이 되는 네트워크에 연결한 뒤 설정 버튼을 한번 눌러주는 것입니다. 이 한번으로 이용자의 프린터는 저절로 웹에 등록되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인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웹과 연동된 프린터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같은 수많은 휴대용 장치와 직접 연동하지 않아도 출력할 수 있는 재주를 넣었다는 점입니다. 이 개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종전에는 휴대 장치와 프린터가 가까운 곳에서 블루투스나 무선 랜 같은 네트워크 등으로 연결했다면 그런 낡은 방식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두 장치가 인식하는 것은 드라이버를 통해 서로 약속된 하드웨어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도 프린팅을 할 수 있게 끔 바꿨습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응용 프로그램에서 프린터가 받은 e-메일 주소를 입력하면 멀리 있는 프린터에서 곧바로 인쇄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 옵션을 통해 프린터에 저장된 e-메일 주소(랜덤 생성으로 인해 좀 복잡합니다)로 보내기만 하면 사진이 인쇄됩니다. JPG, DOC, PDF, PPT 등 다양한 문서들을 인쇄하는데, 이용자는 인터넷으로 서비스되는 이프린트 센터를 통해 프린터의 출력과 하드웨어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복잡하게 프린터 안에서 휴대 장치를 찾아서 연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더 이상 PC가 필요 없다. 이것이 이번 제품의 키워드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드라이버 없이 작동하는 웹프린터를 통해 주변 장치를 쓰기 위해서 꼭 PC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관념을 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프린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에 나섰고, 큰 흐름이 되어가는 클라우드 시대에 나아가야 할 웹프린터의 방향까지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프린터를 하나 발표한 것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PC와 운명을 같이하는 게 아니라 PC를 떠나 더 많은 하드웨어를 끌어안음으로써 프린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생존법을 제시했습니다. 이프린터들은 곧 국내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초고속망이 가장 잘 깔린 나라 중에 하나인 우리나라라면 이프린터들이 더욱 더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PC를 떠난 프린터, 이제 무엇이 PC를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까요?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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